얼마동안 꽃샘 추위로 움추려들었던 꽃망울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과 함께 주변의 학의천으로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와, 개나리다!" "와, 엄마, 꽃이 핀다." "엄마, 정말 예쁘지?." "그런데 물이 정말 차가워. 아직도 겨울 같아." 개울물에 손을 담그며 큰아이가 하는 말입니다. "엄마, 화전해 먹을 거지?" 이제 겨우 몇 개의 봉우리가 터진 진달래를 보고 아이들이 하는 말입니다. "응, 그래. 그런데 아직은 너무 일러. 삼짓날 쯤이면 많이 피겠지." "아니, 벌써 피기 시작하는데 그때 되면 다 떨어지지 않을까?" "글쎄... 괜찮을 거야."
한 동네에 몇년을 살면서 계절의 변화를 보고 느껴왔던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시간의 흐름을 잘 감지합니다. 아직도 하루 일과 중에 대부분을 엄마의 요구와 잔소리가 있어야만 제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건만 계절이 바뀌는 것은 어찌 그리도 잘 알아채는지...
저는 종종 아이들이 지나간 경험을 말할 때, 그것이 아이의 매우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꺼내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즉 이미 몸에 배어있는 것을 말로 표현한다고나 할까? 계절에 대한 감각이 그런 것 같습니다. 갓난아기들조차 봄이 되면 '콧바람'이 들어 집밖에 나갈 것을 재촉하곤 하지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어떤가요? 그 요구는 더 심해져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나가 살 때도 있지요.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계절에 대한 감각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먼저, 아이들은 우주의 질서, 리듬과 아직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세상 속에서 잃어가고 있거나, 마모되가고 있는 감각이 아직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이런 타고난 감각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주변의 환경이 그렇고 부모들의 삶이 그렇고, 사회적 요구가 그러하니....
감각에 대한 글을 쓰려고 준비를 하면서 저는 다시금 주변의 아이들과 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엇보다도 지금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환경이 참으로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온 인간이 자연과 이렇게도 멀게 살고 있다니... 요즘 아이들은 차를 타고 다니는 일에 익숙해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고 짜증을 내기 일쑤입니다. 몸을 움직이거나, 힘을 쓰거나, 힘들게 도달해야하는 일은 좀처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것을 해본 적이 별로 없지요. 또한 깨끗한 것만을 접한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이되었든 조금만 지저분해 보여도 옆에 가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TV, 컴퓨터, 전자오락 등의 매체에는 너무도 열려있어 마치 모두가 그쪽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습니다. 무언가 불균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천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지하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순수성이 이미 너무 잘 갖추어진 산업환경 속에서 하나의 방향으로만 발달하거나 아니면 지나친 과보호 속에서 그 순수성을 펼치고 발달시킬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커가고 있지는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성장환경이 그의 미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성장환경을 골고루, 균형감 있게 제공해주고 변화시키는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이 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다음에는 <생명감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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